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이야기’ (5) 재가 의료급여
의료와 복지에 관련된 글을 쓰다 보니, 연예 뉴스는 놓쳐도 보건·복지 정책은 꾸준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런 내게도 여전히 낯선 제도가 많다. 실제로 복지 대상자가 되는 분들도 정말 ‘몰라서’ 관련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단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의 ‘재가 의료급여’도 그중 하나다. 실제 의료급여 대상자에게 무척 유익한 제도인데도, 그리 알려지질 않은 것 같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엔 특히 더 중요성이 큰데도 말이다.
2023년 기준, 전국 입원환자 수는 733만 명을 넘겼다. 그런데 그중 장기입원 환자가 절반 가까운 42.6%에 달한다. 보통의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수는 평균 9.7일인 반면, 요양병원 등에 장기입원하는 환자는 151일 이상 병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잦다. 실질적인 치료는 끝났는데도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소위 ‘전치 몇 주’라고 불리는 진단서 상의 최장기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이들이 병원이 머무르는 이유는 돌봄 때문이다. 의료적으로는 퇴원이 가능한데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병상에 남는다.
이런 현상을 ‘사회적 입원’이라고 부른다. 치료 목적이 아니라 돌봄 필요 때문에 병원에 눌러앉은 이들을 묘사하기 위해 일본에서 등장한 표현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넘어왔다. 이런 사회적 입원은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에서 입원진료비로 지출되는 금액만 38조 원이 넘는다. 그 가운데 요양병원에서 사용되는 금액이 5.4조 원 수준이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예산도 별도로 13조 원가량이 쓰인다. 정말 위중한 환자의 치료를 위해 비워놔야 할 병원 침대가 돌봄 공간이 되는 만큼 의료 재정도 새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병원이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어떨까. 여기서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은 특정한 장소(place)에 거주한다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냐는 것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 쉽게 말해 우리가 사는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관계와 생활이 쌓이는 하나의 장소다. 동네 어느 골목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몇 분 정도 걸어야 산책할 만한 곳이 나오는지,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셨던 기억, 인사를 건네는 이웃 같은 복합적인 요소가 층층이 쌓인 곳이 집이다. 그런데 병원은 어떤가. 병원은 치료를 위해 조성된 특수한 목적의 공간이다. 생활을 위한 공간배치가 아닌 치료에 최적화된 수동적인 공간에 잠시 머물 순 있어도, 거기서 삶을 영위하긴 어렵다. 시설에 있는 당사자도 썩 행복하진 않단 얘기다.
실제로 2023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의 81.4%는 기능 제한이 없다고 답했다. 일상생활수행능력(ADL)에 제한이 있다는 응답은 8.7%에 불과했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의 68.9%, 85세 이상에서도 절반 가까운 47.5%가 독립생활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기능상 문제가 없다면, 이들은 집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건강이 나빠지면 시설에 입소하겠다”는 응답은 69.3%에 달했다. 내 삶을 영위하던 집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현실적으로 집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우니 시설 입소라는 선택을 하게 떠밀리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울시가 꺼낸 해법이 ‘재가 의료급여’다. 대상은 의료급여 수급자 가운데 병원에서 퇴원은 가능하지만, 당장 돌아갈 집에 별다른 돌봄 자원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돌봄에 대한 공적 사회보장을 수행하는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기에는 기능장애가 경미하거나, 가족의 돌봄에 의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집에 머물고 싶더라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러니 요양시설이나 병원에 입소하는 사회적 입원이 발생하던 것인데, 지역사회 안에서 일상을 회복하도록 지자체가 돕자는 것이다.